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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쓰는 편지

  • 강경구
  • 2017년 3월 7일
  • 2분 분량

어제는 남쪽 여행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매화꽃잎 한없이 흩날리는 어느 주막에서 매실주 한잔 걸치면서 뭇 해와는 또다른 감상에 흠뻑 젖어봤습니다.

봄바람은 이쪽에서 저쪽으로 그냥 불어오는 것이 아니라 이 객의 마음속 한가운데로 흘러드는 온누리의 뻐근한 숨소리인 듯 하더이다.

봄은 항상 숨은 듯이 오곤 하지요.

눈을 감고 있으면 양 미간 사이로 흐르고

쌓여있는 가랑잎 사이로

강과 시냇물사이로

그리고 이 바람 저 바람 그 사이사이로 흐릅니다

그리고는 어느새 저쪽에서 이쪽으로 산불넘듯 훌쩍 넘어옵니다.

그러나 저 가느다란 버들가지가 벌써 눈녹색으로 파랗게 치장될 즈음이면 온 대지는 온통 봄노래로 아우성인데 어찌 그 자신의 실체를 마냥 부정만하고 있을 수 있겠습니까?

섬진강이란 이름의 유래를 알게된 것도 이번여행의 소득이라면 소득이었습니다. 원래는 모래가 많은 강이라 하여 다사강으로 불리었다고 합니다. 고려초 왜구가 빈번히 이 강가에 출몰하곤 하였는데 어느날인가 수십만마리의 두꺼비가 밤새도록 울어대는 바람에 왜구들이 모두 줄행랑을 쳤다고 하더군요. 그 다음부터 두꺼비 섬자를 써서 이 강을 섬진강이라 불렀다고 하더이다.

지금도 다압리 매화마을 앞 수월정옆에는 당시의 두꺼비 네 마리가 이제는 돌로 변신한채 사방으로 버티고 앉아 마을을 수호하고 있더군요. 부리부리한 눈으로 떡 버티고 앉아있는 것이 고놈들 참 듬직하기고 하고 귀엽기도 합디다.

그 두꺼비들이 사는 섬진강을 수년마다 한 번씩 꼭 들려보곤 하지만 항상 제 모습 그대로 변치 않는 모습 자체가 또다시 새로운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요? 섬진강은 유유히 굽이굽이 그마그마한 야산과 마을들 그리고 꼭 그동네에서만 살아가야할 모습의 사람들을 휘감으며 오늘도 말이 없습니다.

섬진강의 모래톱을 아시지요? 과거 다사강의 이름에 걸맞게 저만치 아스라이 퍼져있습니다.

김용택시인이 시어로써 그렇게 많이 퍼내었건만 섬진강의 물은 하나도 줄지 않았더군요.

은어도 빙어도 제자리 , 제첩도 제자리, 한가한 나룻배도 제자리입니다.

돌아오는 길의 핏빛 동백의 현란함은 감상에 젖은 상춘객의 마음을 여지없이 흔들어놓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차라리 폐부 깊숙한 곳을 찌르는 아픈 화살이었습니다. 그 화살은 온통 사방에서 날아와 전신에 무수히 깊은 문신을 만들어 놓았습니다그려.

누가 이 봄을 부드럽다고 하였습니까?

피멍들 듯 그렇게 아픈 모습으로 온 몸을 흠씬 두들겨 맞고 돌아왔습니다.

주말 저녁 돌아오는 길의 차량정체는 멍든 상처의 스물거림으로 오히려 그다지 더디지는 않아 보입디다.

좋은 봄 맞이 하십시요.

2005년 3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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