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길 여행 斷想
강경구
비단길 여행 斷想
대개의 여행이 그렇듯이 우리는 우리와는 이질적인 여러 모습들을 보고 놀라워한다. 간혹은 그 풍경에서 혹은 사람들 사는 모습에서 놀라워 한다. 그런데 그 여행 지역이 우리가 쉽게 근접할 수 있는 지역이 아니라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 한동안 우리와 격절된 곳이고 보면 그 놀라움의 강도는 훨씬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더듬 더듬 지난 여름의 그 놀라움을 헤아려 본다.
첫 기착지 몽골리아, 헬리콥터에서 내려다 보이는 그 끝없이 황량한 벌판들, 그리고 꼬불꼬불한 작은 물줄기들을 따라 겨우 한두 점씩으로 나타나는 천막집들, 그런 환경에서의 생활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 혹은 생존 이상의 어떠한 것이 그들을 그곳에 머물게 하는지? 헬리콥터를 쫓아 끝없이 말을 타고 달려오는 징기스칸의 어린 후예들, 과거 징기스칸 시절에도 이 소년들의 역할이 대단했다고 한다면 우리의 자라나는 소년들과는 얼마나 대조적인가?
馬頭琴의 소리가 귀에 쟁쟁한 채로 그 장대한 천년설 천산산맥을 통째로 굽어본다. 희열감에 싸여 비행기 좌우를 교대로 뛰어가며 여기 봐라 저기 봐라 왁자지껄 떠들어댄다. 우즈베키스탄에 도착하자마자 식품이 든 가방을 몽땅 털려 허탈했던 감정과, 기내에 떨어뜨린 카메라를 찾아주려고 백여 미터나 달려온 승무원을 봤을 때의 감정,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는 법이고 판단은 항상 신중히 할 것!
우루겐치 공항에 내리자마자 얼굴로 확 다가오는 뜨거운 열기, 현재 기온이 43도라니 아!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모양이구나. 고대하던 희바 유적지를 방문했을 때는 사원 건축의 장대함과 오묘함도 잠시, 이름 그대로 ‘타는 목마름’ 속에서 헤매다. 서로를 찾지 못해 미로를 헤매다가 사먹은 그 시커먼 아이스크림은 왜 그렇게 맛있던지. 한 개씩 더 먹었던가? 메고 간 스케치 가방은 그 무게만큼 우리를 못살게 한다.
그 무더위 속에서도 시장 바닥의 소년들은 신문지 조각에 싸인 양고기 덩이 하나 팔려고 이리저리 뛰어 다니고.
7시간 동안 키질 쿰 사막 횡단 중 단연 하이라이트. 안창홍 선생이 사막 한 가운데서 누드쇼를 벌이다. 촬영에 임하는 여유까지 보이면서. 장시간의 여정임에도 뒷좌석에서는 연신 왁자지껄한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안창홍, 강요배 선생의 재담과 윤동구 선생의 호쾌한 웃음소리가 일행에게 활력을 잔뜩 불어넣는다.
부하라의 사원에서 만난 젊은 부부.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이란에서 여기까지 두 달 동안 오직 걷기만 했다는 사람들. Silk Road를 따라 중국까지 걸어가겠다고 했던가?
어디 가서 우리 Silk Road 여행했다고 하지 맙시다.
드디어 사마르칸트에 도착하다. 대 규모의 사원들. 지금까지 20년 동안을 복원했음에도 아직 완성일은 까마득하다는 세계의 보물들이다. 그 건축의 장대함과 화려함을 한참 동안 보고 있노라니 그것을 이루어냈던 권력과 종교와 문화와 그리고 땀의 관계가 복잡하게 교차된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의 가능성은 과연 어디까지인가? 바쁜 일정 중에 모처럼 현지 의사의 초대로 산기슭 별장에서 저녁 만찬을 벌이다. 맞은편 산에 드리워진 산 그림자와 뽀얀 달빛 그리고 그 사이의 양떼들. 모두들 깊은 감동에 젖어 노래로 화답하다.
우즈베키스탄을 지나 러시아로 붉은 광장으로 대표되는 모스크바의 엄청난 규모에 다시 한 번 사회주의 국가를 상기하다. 그리고 페테르부르그행 야간열차. 건축과 자연과 인간과 물이 한데 어울려 일정한 법도와 향기를 뿜어내는 아름다운 도시. ‘이콘’ 화의 강렬한 인상에 한참 동안이나 몸과 마음을 빼앗겼던 에르미타쥬박물관. 세계대전에서도 살아남은 이 도시의 아름다움에 모두들 경탄을 금치 못하다.
그리고 마지막 날 발틱해변의 밤. 김호동 선생의 옹고집으로 기어이 세찬 바닷바람속에서 모닥불을 일궈 낸 날. 모닥불과 가곡과 보드카가 뜨거운 경쟁을 벌인 날. ‘가고파’와 김민기의 ‘친구’ 가 해변에 범람했던 날이다.
이제 비단길 여행에서 돌아왔다.
교역의 길이요. 새로움의 길이기도 한 동시에 투쟁의 길, 지배와 굴욕의 길 그리고 인간의 온갖 탐욕이 함께 했던 길, 생활의 질곡이 그득히 서려 있는 길.
달빛 가득한 그 길을 우리는 당나귀 한 마리 벗 삼아 다시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화폭 하나 등에 메고 그 마음의 길을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