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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길 위에서

여기는 몽골 초원 그 가운데 어디쯤이다.

연한 백록의 허브와 보라색 라벤더가 지천으로 깔려 코와 눈을 멀게 한다.

시작이 없고 끝이 없는 아스라한 지평선. 그 끝 즈음해서 너른 하늘이 명징하게 솟아오른다.

스물스물 일어나던 조각 구름들은 하늘밭에서 뒹굴며 몸집을 키우다가, 어느새 스스로의 몸무게로 무지막지한 폭우를 쏟아낸다.

너무나도 평온해 보이는, 혹은 섭리처럼 오고 가는, 거부할 수 없는 풍경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온 가운데에서도 생존의 처절함은 존재하고, 먹이사슬의 살벌한 질서가 도도하다.

하얗게 표백되어 길옆에 쓰러진 원형 그대로의 동물들 모습에서 생성과 소멸이 함께 붙어 있음을 본다.

그 거칠고도 은밀한 야생 속으로 들어서려면 대 초원의 실타래 같은 길을 거쳐야 한다.

때로는 수십 가닥 씩 , 때로는 외줄기로 초원을 가로지르는 길.

있는 듯 사라지고 사라지듯 다시 나타나는 길이다.

그러나 그 길에도 엄연한 생노병사의 윤회가 존재한다.

태어나는가하면 사라지고 , 다시 만들어졌다가는 순식간에 바람 속으로 사라진다.

차 한번 지나가면 길이요, 비 한번 내리면 황무지다.

모든 평원이 다 길이요. 모든 평원이 다 길이 아니기도 하다.

또 길이라고 해서 다 길이 아니다.

가다가 막히는 길이 있고 , 아득한 미궁으로 유도하는 길이 있고, 뱅뱅 돌기만 하는 길이 있는가하면, 어이없게도 처음으로 되돌아 나오는 길도 있다.

어쩌면 길은 그 본질적 모습을 절대 드러내지 않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은 그 길위에 놓여진 수많은 허튼 길 중에 하나일지도 모른다.

문득 신기루처럼 길이 하늘위로 날아오른다.

끝없이 반복되는 말 잔등을 닮은 구릉들. 그 위를 넘실대는 유유한 독수리의 날갯짓.

매서운 바람과 시꺼멓게 흩날리는 하늘. 그 사이를 좌충우돌 빠져나가는 끝없는 비포장 도로.

몇 날 몇 일을 토할 듯 덜컹거리고, 머리가 지끈지끈 달아올라 차라리 지독한 먼지바람이 상쾌하게 느껴질 때, 우리는 겨우 야생의 길 그 초입에 다다른다.

그리고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신기할 것도 없는 너무나 무표정한 이 절대 공간, 그 절대 자연속에 파묻힐 때쯤 얼핏 바람속에서 들리는 소리가 있다.

너는 누구냐?

2013년 고비사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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