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이 그린 자화상

한창 작업중이었다.

갑작스런 '쿵'소리에 놀라 베란다로 나가보니 참새 한 마리가 바닥에서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가만히 손으로 들어보니 심한 뇌진탕인 듯 목은 축 처지고 눈은 벌써 가물거리고 있었다. '쯧쯧, 날더라도 앞을 잘 보고 날아야지'

무심히 고개를 들어 바깥쪽에서 안 쪽으로 유리문을 들여다보니 아! 그 속에는 진녹색의 청계산 전경이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실제보다도 훨씬 더 멋진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것은 새들의 파라다이스였다.

순간 섬뜩함이 느껴졌다. ( 어느해 초여름 작업실에서 )

그림을 시작한지도 이제 꽤 시간이 흐른 것 같다. 생각해보면 참 많은 시간을 골방에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지낸 것 같은데 그 사이에 헛된 돌진들은 얼마나 많았을까 하는 생각에 머리가 쭈뼛쭈뼛하다.

서울 별곡 시리즈가 만들어질 때에는 서울의 방방곡곡을 뒤지면서 사방에 펼쳐진 산과 산맥들, 그리고 그 속에 펼쳐진 인간과 인간들이 사는 모습, 달동네들의 진한 감동들을 담기위해 발품꽤나 팔았던 것 같고 , 숲과 산불 시리즈가 만들어질 때에는 동해안을 안팎으로 훑으면서 많은 시간 동안 그 숲의 비경과 산불뒤의 매캐함을 좌충우돌 좇기도 했다.

수 차례에 걸친 몽골과 인도 여행에서 대지와 인간이 어떻게 몸으로 만날 수 있는가를 목격하게 되었고 어쩔 수 없는 인간의 경계와 그 어쩔 수 없는 경계의 넘나듬도 바로 옆에서 찐하게 느껴야 했다. 그러나 항상 그렇듯 느낌과 표현은 전혀 별개의 세계.

요즈음은 주로 천둥 벌거숭이로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 모습에 자꾸 관심이 간다. 한정된 시간 속의 여러 인간들 모습들이 다양한 앵글로 잡혀온다.

그 중에서 자화상도 한 몫을 한다. 자화상이 그려지는 이유야 참으로 많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주로 방황의 시기에 많이 그려졌던 것 같다. 그 시간에 공교롭게 눈, 비가 내려준다면 눈, 비 섞인 자화상이 되기 마련이다. 자화상은 고요한 독백성의 메시지이기 때문에 다른 그림들과는 또 달리 그 시간과 모든 주변 상황이 참으로 중요하고 그림 속에 당시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기기 마련이다.

옆의 목판 자화상은 몇 년 전 한창 개인전 준비를 할 때의 작업으로 변덕스러운 내 마음을 추스려보기 위해 만들었던 것이다. 주술적인 의미까지는 아니더라도 자화상이란 항상 나를 반추해보는 충분한 의미가 된다.

요사이 점점 내 모습을 닮아가고 있는 듯한 내 그림들 속에서 이런 생각을 한다.

좀 더 단순하게, 좀 더 명쾌하게, 좀 더 쉽게 , 좀 더 투덕투덕하게.....

헤럴드 경제 2010 .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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