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숭동 소묘
“꼬마야 저기 돌멩이 좀 날라주지 않을래?” 얘기가 끝나자마자 혜화국민학교 2학년 꼬맹이는 메고 있던 가방속의 책들을 몽땅 빼내고 운동장 끝에 쌓여있던 자갈들을 빈 가방에 담아 뜀박질로 공수해댔다. 운동장은 이미 자욱한 최루가스로 눈조차 뜨기...
야생의 길 위에서
여기는 몽골 초원 그 가운데 어디쯤이다. 연한 백록의 허브와 보라색 라벤더가 지천으로 깔려 코와 눈을 멀게 한다. 시작이 없고 끝이 없는 아스라한 지평선. 그 끝 즈음해서 너른 하늘이 명징하게 솟아오른다. 스물스물 일어나던 조각 구름들은...
드로잉
드로잉은 거칠고 무계획적이며 도전적이고 아직 곳곳에 혈흔이 배인 날 것이다. 드로잉은 생각의 내리꽂힘이다. 따라서 누구와도 닮을 수 없는, 가장 자기다운 내면의 진한 울림이요 자신을 세상에 일차적으로 투영시키는 손수건만한 창문이다. 드로잉에는 뭇...
작가들이 그린 자화상
한창 작업중이었다. 갑작스런 '쿵'소리에 놀라 베란다로 나가보니 참새 한 마리가 바닥에서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가만히 손으로 들어보니 심한 뇌진탕인 듯 목은 축 처지고 눈은 벌써 가물거리고 있었다. '쯧쯧, 날더라도 앞을 잘 보고 날아야지'...
초 상 - 추억이 깃든 나의 그림
"인물이 가장 어렵고 산수가 다음이고 화훼가 그 다음이다. 귀신그리기가 제일 쉽다." 옛 화론에 나오는 이야기다. 풀어 말하자면 눈에 보이지 않는 , 형상이 일정치 않은 귀신이나 도깨비는 작가가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할 수...
봄에 쓰는 편지
어제는 남쪽 여행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매화꽃잎 한없이 흩날리는 어느 주막에서 매실주 한잔 걸치면서 뭇 해와는 또다른 감상에 흠뻑 젖어봤습니다. 봄바람은 이쪽에서 저쪽으로 그냥 불어오는 것이 아니라 이 객의 마음속 한가운데로 흘러드는 온누리의...
天竺國에서
2004년 4월 3일 - 天竺國에서 우리는 그들의 삶속으로 결코 한 발자국도 다가설 수 없었다. 그들의 삶은 예측할 수 없는 어떤 계시에 의해 혹은 완고한 어떤 운명의 힘에 의해 지탱되고 있었다. 소위 21세기 문명사회의 일반적 사고로서는...
비단길 여행 斷想
강경구 비단길 여행 斷想 대개의 여행이 그렇듯이 우리는 우리와는 이질적인 여러 모습들을 보고 놀라워한다. 간혹은 그 풍경에서 혹은 사람들 사는 모습에서 놀라워 한다. 그런데 그 여행 지역이 우리가 쉽게 근접할 수 있는 지역이 아니라 여러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