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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숭동 소묘

“꼬마야 저기 돌멩이 좀 날라주지 않을래?”

얘기가 끝나자마자 혜화국민학교 2학년 꼬맹이는 메고 있던 가방속의 책들을 몽땅 빼내고 운동장 끝에 쌓여있던 자갈들을 빈 가방에 담아 뜀박질로 공수해댔다.

운동장은 이미 자욱한 최루가스로 눈조차 뜨기 힘들고, 쎄느강과 미라보 다리를 사이에 둔 학생과 경찰간의 공중전이 살벌했지만 이미 익숙한 광경이라 그리 겁날 것도 없었다.

시발택시 위에서 깃발을 든 학생들이 열심히 구호를 외치며 질주하는 광경, 귓전을 가르는 총성 속에 아비규환하는 군중들의 모습 등 끔찍한 풍경들이 이미 일상이 되어버렸을 때니까.

돌멩이들이 허공을 횡행하는 그 짬 사이로 종종 먼 하늘은 붉게 붉게 타오르곤 했다.

그 것이 4.19라는 걸 언제 알았는지는 기억에 없다.

그로부터 10여년 후

동숭동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그림도 끄적이고, 이 강의 저 강의 귀동냥도 하고, 문리대 탈춤패들 언저리에서 보낸 시간들이 있었다. 공연이 있을 때는 열흘씩 한달씩 합숙훈련을 하며 카바이트 막걸리에 쩔어서 살았다. 노래방이 있을 리 만무했던 그 시절 모든 학생들은 모두 “ 나는 가수다 ” 였다. 수십 곡, 수백 곡씩 아무리 긴 노래도 가사를 줄줄 꾀어댔다. 밤샘 고성방가에도 누구 하나 나무라지 않으니 여기가 바로 무법천지 아니면 별유천지비인간이었다. 이 정도면 이미 노래가 아니라 몸부림이요, 울분이요, 진한 자기최면이기도 했다. ‘그건 너’ ‘아침 이슬’ ‘친구’ 등등이 주 메뉴로 동숭동 밤을 혜성처럼 떠돌았다.

여기는 학림다방이다. 그나마 이 동네에서 유일하게 옛 정취가 살아있는 곳이다. 삐걱거리는 계단을 올라 문을 들어서자 지직거리는 엘피판. 들어봄직한 아리아가 묘하게도 회상의 속도를 빠르게 혹은 느리게 과거로 되돌려 놓는다. 낡은 테이블과 커피잔 사이, 벽마다 빼곡한 낙서들 사이, 그리고 창 밖 플라타나스 가지 사이로 그 옛날 웃지못할 사연들이 가물가물하게 떠오른다. 마냥 어린 시절의 열정과 치기, 황당했던 꿈과 좌절 ,세상이 내 것인양 떠들어대던 호기,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부끄러움들이 뒤죽박죽 오버랩된다.

그 모든 것이 버무려진 이 한 잔의 커피는 그래서 그런가 제법 쓰다.

창밖에는 어느새 몇 십년 만이라는 추석 수퍼문도 둥실둥실 추억처럼 흐른다.

2015. 강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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