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숭동 소묘
“꼬마야 저기 돌멩이 좀 날라주지 않을래?” 얘기가 끝나자마자 혜화국민학교 2학년 꼬맹이는 메고 있던 가방속의 책들을 몽땅 빼내고 운동장 끝에 쌓여있던 자갈들을 빈 가방에 담아 뜀박질로 공수해댔다. 운동장은 이미 자욱한 최루가스로 눈조차 뜨기 힘들고, 쎄느강과 미라보 다리를 사이에 둔 학생과 경찰간의 공중전이 살벌했지만 이미 익숙한 광경이라 그리 겁날 것도 없었다. 시발택시 위에서 깃발을 든 학생들이 열심히 구호를 외치며 질주하는 광경, 귓전을 가르는 총성 속에 아비규환하는 군중들의 모습 등 끔찍한 풍경들이 이미 일상이 되어버렸을 때니까. 돌멩이들이 허공을 횡행하는 그 짬 사이로 종종 먼 하늘은 붉게 붉게 타오르곤 했다. 그 것이 4.19라는 걸 언제 알았는지는 기억에 없다. 그로부터 10여년 후 동숭동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그림도 끄적이고, 이 강의 저 강의 귀동냥도 하고, 문리대 탈춤패들 언저리에서 보낸 시간들이 있었다. 공연이 있을 때
야생의 길 위에서
여기는 몽골 초원 그 가운데 어디쯤이다. 연한 백록의 허브와 보라색 라벤더가 지천으로 깔려 코와 눈을 멀게 한다. 시작이 없고 끝이 없는 아스라한 지평선. 그 끝 즈음해서 너른 하늘이 명징하게 솟아오른다. 스물스물 일어나던 조각 구름들은 하늘밭에서 뒹굴며 몸집을 키우다가, 어느새 스스로의 몸무게로 무지막지한 폭우를 쏟아낸다. 너무나도 평온해 보이는, 혹은 섭리처럼 오고 가는, 거부할 수 없는 풍경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온 가운데에서도 생존의 처절함은 존재하고, 먹이사슬의 살벌한 질서가 도도하다. 하얗게 표백되어 길옆에 쓰러진 원형 그대로의 동물들 모습에서 생성과 소멸이 함께 붙어 있음을 본다. 그 거칠고도 은밀한 야생 속으로 들어서려면 대 초원의 실타래 같은 길을 거쳐야 한다. 때로는 수십 가닥 씩 , 때로는 외줄기로 초원을 가로지르는 길. 있는 듯 사라지고 사라지듯 다시 나타나는 길이다. 그러나 그 길에도 엄연한 생노병사의 윤회가 존재한다. 태
드로잉
드로잉은 거칠고 무계획적이며 도전적이고 아직 곳곳에 혈흔이 배인 날 것이다. 드로잉은 생각의 내리꽂힘이다. 따라서 누구와도 닮을 수 없는, 가장 자기다운 내면의 진한 울림이요 자신을 세상에 일차적으로 투영시키는 손수건만한 창문이다. 드로잉에는 뭇 생명과 인연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사랑이 있고 세상에 대한 분노와 격정, 한숨과 회한을 쓸어담는 따뜻한 humanity가 있으며 삶에 대한 관조와 깊은 통찰이 있다. 2013. 강경구
작가들이 그린 자화상
한창 작업중이었다. 갑작스런 '쿵'소리에 놀라 베란다로 나가보니 참새 한 마리가 바닥에서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가만히 손으로 들어보니 심한 뇌진탕인 듯 목은 축 처지고 눈은 벌써 가물거리고 있었다. '쯧쯧, 날더라도 앞을 잘 보고 날아야지' 무심히 고개를 들어 바깥쪽에서 안 쪽으로 유리문을 들여다보니 아! 그 속에는 진녹색의 청계산 전경이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실제보다도 훨씬 더 멋진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것은 새들의 파라다이스였다. 순간 섬뜩함이 느껴졌다. ( 어느해 초여름 작업실에서 ) 그림을 시작한지도 이제 꽤 시간이 흐른 것 같다. 생각해보면 참 많은 시간을 골방에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지낸 것 같은데 그 사이에 헛된 돌진들은 얼마나 많았을까 하는 생각에 머리가 쭈뼛쭈뼛하다. 서울 별곡 시리즈가 만들어질 때에는 서울의 방방곡곡을 뒤지면서 사방에 펼쳐진 산과 산맥들, 그리고 그 속에 펼쳐진 인간과 인간들이 사는 모습, 달동네들
초 상 - 추억이 깃든 나의 그림
"인물이 가장 어렵고 산수가 다음이고 화훼가 그 다음이다. 귀신그리기가 제일 쉽다." 옛 화론에 나오는 이야기다. 풀어 말하자면 눈에 보이지 않는 , 형상이 일정치 않은 귀신이나 도깨비는 작가가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겠다. 그러면 반대로 인물화는 어떨까? 동양미술에서는 인물화의 까다로움이 대단하다. 특히 임금의 초상인 어진이 그렇다. 대상의 크기나 비례는 물론 안면의 주름이나 근육을 살펴야하고 모발이나 수염의 숫자까지 헤아려야했다. 임금이 오랫동안 전속모델처럼 시간을 많이 할애해주지 않을 뿐더러 많은 심사위원들이 그림의 잘잘못을 따지니 웬만한 화사로선 꿈도 꾸지 못할 자리였다.오직 당대 제일의 화가들만이 이 영광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이상좌, 변상벽, 조영석, 김홍도, 김은호 등이 어용화사로서 화명을 떨친 이들이다. 이 그림은 근래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초상'이라는 작업 중 하나다. 많은 경우 특정
봄에 쓰는 편지
어제는 남쪽 여행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매화꽃잎 한없이 흩날리는 어느 주막에서 매실주 한잔 걸치면서 뭇 해와는 또다른 감상에 흠뻑 젖어봤습니다. 봄바람은 이쪽에서 저쪽으로 그냥 불어오는 것이 아니라 이 객의 마음속 한가운데로 흘러드는 온누리의 뻐근한 숨소리인 듯 하더이다. 봄은 항상 숨은 듯이 오곤 하지요. 눈을 감고 있으면 양 미간 사이로 흐르고 쌓여있는 가랑잎 사이로 강과 시냇물사이로 그리고 이 바람 저 바람 그 사이사이로 흐릅니다 그리고는 어느새 저쪽에서 이쪽으로 산불넘듯 훌쩍 넘어옵니다. 그러나 저 가느다란 버들가지가 벌써 눈녹색으로 파랗게 치장될 즈음이면 온 대지는 온통 봄노래로 아우성인데 어찌 그 자신의 실체를 마냥 부정만하고 있을 수 있겠습니까? 섬진강이란 이름의 유래를 알게된 것도 이번여행의 소득이라면 소득이었습니다. 원래는 모래가 많은 강이라 하여 다사강으로 불리었다고 합니다. 고려초 왜구가 빈번히 이 강가에 출몰하곤 하였는데 어느
天竺國에서
2004년 4월 3일 - 天竺國에서 우리는 그들의 삶속으로 결코 한 발자국도 다가설 수 없었다. 그들의 삶은 예측할 수 없는 어떤 계시에 의해 혹은 완고한 어떤 운명의 힘에 의해 지탱되고 있었다. 소위 21세기 문명사회의 일반적 사고로서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을 것 같은, 그래서 많은 우리의 예상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리는 그들이었다. 그 곳에는 시간이 흐르고 있지 않았다. 시장 바닥의 왁자지껄함 속에서도 혹은 도시를 바삐 돌아다니는 릭샤꾼의 분주한 발놀림 속에서도 그것은 항상 정지태로만 그리고 스틸 사진으로만 다가왔다. 무엇일까? 그들을 이끄는 힘은. 어떤 보이지 않는 실타래에 의해 조종되고 있는 듯한 사람들. 저 허공의 중간쯤을 향하는 그들의 걸음걸음과 눈빛은 도대체 어디에 근거하는 것일까? 그것을 단지 ‘신비’나 혹은 ‘종교적 맹신’으로만 치부할수 있을까? 그렇다면 저들이 가지는 현실에 대한 진지함은 또 무엇인가? 그리고 그 현실적
비단길 여행 斷想
강경구 비단길 여행 斷想 대개의 여행이 그렇듯이 우리는 우리와는 이질적인 여러 모습들을 보고 놀라워한다. 간혹은 그 풍경에서 혹은 사람들 사는 모습에서 놀라워 한다. 그런데 그 여행 지역이 우리가 쉽게 근접할 수 있는 지역이 아니라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 한동안 우리와 격절된 곳이고 보면 그 놀라움의 강도는 훨씬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더듬 더듬 지난 여름의 그 놀라움을 헤아려 본다. 첫 기착지 몽골리아, 헬리콥터에서 내려다 보이는 그 끝없이 황량한 벌판들, 그리고 꼬불꼬불한 작은 물줄기들을 따라 겨우 한두 점씩으로 나타나는 천막집들, 그런 환경에서의 생활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 혹은 생존 이상의 어떠한 것이 그들을 그곳에 머물게 하는지? 헬리콥터를 쫓아 끝없이 말을 타고 달려오는 징기스칸의 어린 후예들, 과거 징기스칸 시절에도 이 소년들의 역할이 대단했다고 한다면 우리의 자라나는 소년들과는 얼마나 대조적인가? 馬頭琴의 소리가 귀에 쟁쟁한 채로 그